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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세계인의 문화유산 가장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 일반관람

by 효이리 2011. 5. 24.

 

 

세계인의 문화유산 가장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의 일반관람

 

서울에 살면서 서울의 대표적 여행지들을 가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친구들에게 "서울 많이 알아!" 하지만 서울은 넓고 내가 아는 곳은 서울의 일부분인 것 같다.

서울에는 궁궐들이 있는데 경복궁, 경희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정말 많다.

이중에 내가 가본것이 얼마나 될까? 한손가락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예전부터 구경하고 싶었던 창덕궁을 가보았다!!

 

창덕궁일반관람과, 후원관람으로 나누어 진다.

일반관람은 매표소에서 3,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되지만 후원 관람은 조금 복잡하다.

후원관람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하거나 아니면 후원관람 매표소에서 다시 표를 구입해야 한다.

후원관람 입장료는 5,000원 이지만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창덕궁을 입장해야 하기 때문에 총 8,000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창덕궁 입구 매표소의 모습

 

종각에서 볼일을 보고 인사동 거리를 지나서 창덕궁까지 도착하는데 한30분정도 걸리는 것 같다.

미리 예약을 해서 입구 매표소에서 8,000원에 후원까지 갈 수 있는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의 모습(보물 383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다.

돈화문은 1412(태종12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임진왜란때 불에 타버려서

1609년(광해군 원년)에 다시 지은 것이 현재 남아있는 모습니다.

돈화문은 현재 남아있는 궁궐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이다.

돈화'큰 덕은 백성등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창덕궁안으로 들어와서 본 돈화문의 모습

 

조선 시대에는 돈화문 이층 문루에 종과 북이 있어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는다고 한다.

돈화문에서 입장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회화나무들이다.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돈화문 주변에는 300~4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있다.

 

돈화문 주변의 회화나무

 

회화나무를 보면서 앞으로 오면은 창덕궁세계유산이라고 소개해놓은 비석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금천교를 만날 수 있다.

 

세계유산이라고 설명해 놓은 비석

 

창덕궁은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비석에 설명된 내용을 보면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건축으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특히 왕궁의 정원인 후원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정원으로 손뽑힌다고 소개 되어있다.

 

나도 창덕궁을 실제로 오고 싶었던 이유는 창덕궁의 후원을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창덕궁 일반관람 포스팅이 끝나고 후원은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다.

 

창덕궁 금천교의 모습

 

금천교를 지나지 않고 먼저 구경한 곳이 궐내각사이다.

궐내각사는 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관청은 대부분 궐 바같에 있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안에 세운 관청들이라고 한다.

 

 

궐내각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궐내각사의 입구로 들어가면 미로의 시작에 온 느낌이다.

그 유가 궐내각사는 여러 부서들이 밀집된 형태여서 복잡하게 구성이 되었다고 한다.

 

규장각의 모습

 

규장각은 다른 이름으로 내각 또는 이문원 이라고도 했다.

왕권확립, 개혁정치, 문예부흥을 표방한 정조가 특별한 의지와 관심을 쏟은 곳이기도 하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도서 보관 및 출판과 정치자문 등을 담담하던 국가 기관이다.

 

검서청의 모습

 

검서청규장각의 서적을 점검하는 사람들이 입직을 서던 규장각의 부속건물이다.

금천이 옆으로 흐르고 있어서 일하는 공간이 상당히 쾌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검서청의 뒷편의 모습

 

검서청의 뒷편에서 지붕을 보았는데 지붕의 단청의 모습과 그 곡선이 너무 예쁘다.

일자가 아닌 곡선의 지붕은 딱딱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동편에 있는 궐내각사로 가는길의 모습

 

흐릿하게 뒤쪽으로 검서청의 모습이 보인다.

 

검서청 뒤쪽으로는 동편에 있는 궐내각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궐내각사 동편에는 홍문관내의원이 있다.

 

 진설청의 모습

 

 선원전의 모습

 

 내찰당의 모습

 

양지당의 모습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다례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다.

옆면 좌우로 진설청내찰당을 덧붙여서 제사 의례에 상용했다.

동쪽에 있는 양지당은 왕이 제사 전날 머무르던 어재실이다.

선원전은 보물 제8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저멀리 인정전의 지붕이 보인다.

 

궐내각사의 약방의 모습

 

동편의 궐내각사를 찾아가다가 선원전 일원으로 빠져서 구경하다 보니 동편 궐내각사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선원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이쪽저쪽으로 방황하다가 찾은 약방의 모습이다.

정말 궐내각사는 완전 미로라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진선문을을 들어서면 보이는 인장전 외행각 마당

 

진선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보인다.

이 넓은 곳이 처음에 마당이라고 생각을 못해서 왜 이 넓은 공터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저멀리 보이는 문이 숙장문인데 이 마당은 진선문 쪽이 넓고 숙장문 쪽이 좁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인정문과 숙정문의 모습

 

인정문의 모습

 

인정문을 통과하면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인정전으로 갈 수 있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인정전과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의 모습

 

 인정전의 모습

 

인정전 기와 위에 있는 잡상들과 용두의 모습

 

인정전은 1405년(태종5)에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18)에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2)에 재건, 1803년(순조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 복원해 현재의 모습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국보 제 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전 내부의 모습

 

 인정전 위에서 조정을 바라본 모습

옆에서 본 인정전의 모습

 

인정전 내부는 전등, 커튼, 유리 창문등과 함께 1908년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국가의 주요의식을 치르는 곳이라서 제일 크고 웅장하다.

인정전 위에서 조정을 바라보면서 왕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정전 옆쪽으로 가면 임금의 집무실로 쓰였던 선정전이 나온다.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선정문의 모습

 

 선정전 내부의 모습

 

 복도각의 모습

 

선정전에서 바라본 인정전의 모습

 

선정전은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인 강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고 한다.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세조때 조계청에서 선정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며 현재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원전으로 들어가는 복도각은 드라마에서 많아 봤던 것 같다.

왕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복도각을 달려오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선원전을 나오면 옆으로 희정당 입구가 보인다.

희정당은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이다.

인정전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한다.

 

 희정당 입구의 모습

 

희정당의 서쪽 옆모습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희정당은 보물 제815호로 지정 되어 있다.

 

희정당의 정면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한건지 들어가는 입구가 막혀 있었던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조전 들어가는 쪽에서 희정당의 내부 모습을 간략하게 볼 수 있었다.

내부의 인테리어는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희정당 옆쪽으로 들어가면 왕비의 침전이 있는 대조전으로 갈 수 있다.

대조전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희정당과 대조전이 연결 되어있는 통로

 

 대조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대조전의 모습

 

대조전은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일부 개조하였으며, 왕실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대조전은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조전의 침대

 

대조전 내부에 침대가 있었다.

침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사용하셨던 것이라고 한다.

매트리스가 중앙부가 함몰되고 덮개천도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에이스침대에서

4차례의 자문회의를 통해 수리,복원하였다고 한다.

 

왕들은 온돌바닦에서 이불을 깔고 잠을 잤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조선말기에는 침대도 사용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역시 일반침대와는 달리 고풍스럽다고 해야하나^^;;

 

대조전을 구경하고 나오면 성정각을 볼 수 있다.

성정각세자의 교육장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성정각 전경

 

 성전각의 모습

 

 옆에서 바라본 성정각의 모습

 

집희의 모습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꺾인 2층의 누가 붙어 있어 독특한 모습이다.

성정각 뒤편에 있는 관물헌은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와 접견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집희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삼삼와와 승화루의 모습

 

현재 성정각낙선재 사이, 후원으로 넘어가는 넓은 길에는 원래 높은 월대 위에 당당하게 자리한 중희당이 있었다고 한다.

세자는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궐 안 동쪽에 거처를 마련해 동궁이라 했는데 이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다.

현재 남아있는 삼삼와승화루는 예전에 서고와 독서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정각을 나와서 낙선재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낙선재석복현한 여인에 대한 헌종의 깊은 사랑이 담긴 전각이다.

세자를 얻기 위해 간택하여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한 헌종은 경빈 김씨를 무척 아껴

함께 지낼 새 보금자리로 이들 전각을 마련했다고 한다.

 

낙선재 일원의 모습 

 

낙선재의 모습

 

낙선재 내부의 모습

 

낙선재 창문을 통해본 낙선재 후원의 일부분

 

 

낙선재는 전혀 궁궐같지 않은 느낌이다.

궁궐처럼 전혀 화려하지 않고 일반 기와집 같은 느낌이다.

 

낙선재는 창살과 벽제의 무늬 등에서 청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헌종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성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이다.

 

낙선재의 후원이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후원을 낙선재의 창문을 통해서만 보고 온것이 정말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석복현의 모습

 

석복현'복을 내리는 집'이란 뜻이다.

왕실의 '복'이란 다름아닌 세자를 얻는 일이다.

 

석복현낙선재와 마찬가지로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이다.

화려한 궁궐속에서 소박한 느낌이랄까 약간은 친근한 느낌의 궁궐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낙선재 일원의 모습

 

 

낙선재의 출입문에서 보이는 평원루(상량정)의 모습

 

낙선재 뒤쪽의 후원의 육각형 정자인 평원루의 모습이다.

석복현의 뒤에는 한정당이, 수강재의 뒤에는 취운정이 남아있다.

 

 

 나오면서 보는 인정전 외행각 마당의 모습

 

진선문 뒷모습

 

창덕궁은 넓지만 각각 건물들이 잘 어우려져 있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세자 였다면 창덕궁에서 숨바꼭질을 엄청 했을것이다.

넓게 확트인 공간도 있지만 오밀조밀하게 미로처럼 엮인곳도 많은 곳 같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창덕궁 일반관람을 하고 나오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입장시간이 지나서 인지 돈화문은 굳게 닫혀있고 다른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매표소 앞에 있는 달빛기행 문구가 보인다.

내가 갔던날이 달빛기행이 있던 날이라서 준비 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창덕궁의 달빛기행을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