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지형을 살려 만든 왕실의 휴식처,
아시아 3대 정원이라 불리는 곳
창덕궁 후원특별관람
창덕궁 후원을 구경하고 싶어서 전날 창덕궁 홈페이지(http://www.cdg.go.kr)애 들어가서 후원특별관람을 예약하였다.
예약은 하루전날까지 예약할 수 있으며 한국어, 일어, 중국어, 영어로 안내 받을 수 있다.
시간표는 창덕궁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창덕궁 매표소에서 예약사항이 적힌 프린트 종이를 보여주고 후원관람 입장권까지 한번에 받을 수 있었다.
창덕궁 일반관람 3,000원 후원관람 5,000원 총 8,000원의 비용이 들었다.
돈화문에서 입장권을 보여주고 금천교를 지나 인장전 외행각 마당을 통과해서 쭈욱가면 성정각 옆에 후원 매표소가 보인다.
후원 매표소의 모습
후원 입구의 모습
후원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신 분은 위의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예약이 1회에 50명까지 예약이 되고 나머지는 매표소에서 현장판매를 한다.
한번에 15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예약을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현장에서 표를 구하면 될 것 같다^^
처음 1회와 2회 마지막 16 17회를 제외하고는 30분마다 입장하며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각각 시간이 달라 시간표를 꼭 참고 해야한다.
성정각에서 바라본 모습
내가 후원 매표소까지 너무 여유있게 도착해서 15분정도를 후원입구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성정각으로 들어가 햇빛을 피하였다.
세자가 공부하는 곳인 성정각에서는 인정전 지붕까지 한번에 보인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후원입구에서 5분정도 천천히 걸으면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내리막길 앞에서 잠시 멈춰서 가이드와의 인사와 후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신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후원은 창덕궁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고, 가끔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가 나타나기도 했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절경들은 골짜기마다 숨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직접 걸어서 골짜기의 연못과 정자들을 찾아다녀야만 후원의 진정한 아름다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이드 해주시는 분께서 후원은 아시아 3대 정원중에 하나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영화당의 모습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으면 저멀리 영화당의 모습이 보인다.
영화당을 보면서 내리막을 다 내려왔을 때 눈앞에 보이는 부용지의 모습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부용지와 주합루,규장각의 모습
부용지는 후원에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공간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고 한다.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을 지었다고 한다.
휴식을 위해 지어진 부용정의 모습, 연못에 발을 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창건한 2층 누각이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열람실인 주합루를 만들었다.
규장각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란 뜻이고, 주합루란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이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이 '어수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으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 준다.
주합루와 어수문의 모습
어수문의 모습
어수문의 모습
가파른 언덕의 주합루의 모습
멀리서 주합루를 보았을때는 높다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문앞에서 주합루를 쳐다보니 상당히 가파르다.
임금님 책읽으로 가시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든다^^
어수문옆에 또다른 문이 두개가 있다.
가이드님 이야기로는 어수문으로는 임금님 많이 다닐 수 있었고 신하들은 어수문 옆의 조그마한 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주합루의 울타리는 취병이라는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기법을 사용하였다.
취병은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로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울타리를 재현한 취병의 모습
주합루의 울타리 취병의 모습
주합루의 울타리는 취병을 사용하였는데 처음에 봤을때 참 독특했다.
지금까지 창덕궁에 와서 돌담만을 봐왔는데 이렇게 대나무를 가지고 만든 울타리는 느낌이 달랐다.
비록 문헌과 그림을 통하여 재현을 해놓은 것이지만 자연친화적 느낌으로 후원에 잘 어울려 보인다^^
영화당 엎에서 본 부용지의 모습
영화당 앞에서 부용지의 모습을 보면 정말 부용정이 부용지에 발을 담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당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를,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영화당의 모습
내가 갔을때 봄날의 초대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이라는 주제로 후원 주요 6개 정자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영화당도 이벤트 하는 정자중의 한곳이라서 영화당 안에서 부용지의 경치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의두합의 입구
의두합과 궐안에서 가장 작은 운경거로 추정되는 건물
부용지 에서 조금만 걸으면 애련지와 의두합이 나온다.
'기오현'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4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애련지의 모습
애련정의 모습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고 한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불로문의 모습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세로판석에 돌쩌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나무문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전해진다.
역시 왕들도 무병장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불로문을 만들어 아무탈없이 오래살길 빌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도 이문을 지나갔으니 아무 탈없이 오래 살겠지??
연경당 입구의 전경
연경당의 대문 장락문
연경당의 신하들이 살았을 곳
연경당의 마구간으로 쓰였을 만한 곳
연경당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좌측으로는 신하들이 살았을 방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마구간의 용도로 사용했을 공간이 보인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의 모습은 보이지만 안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랑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모습
저멀리 선향재의 모습
안채로 이동하는 문
사랑채의 전경
사랑채에서 바로 안채로 갈 수 있는 조그마한 문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순조 28)경에 창건했다고 한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경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대부 집을 본떠 사랑채와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는 청나라풍으로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방에 도래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안채의 모습
안채 마당의 모습
안채 방안의 모습
안채 뒷편의 모습
창건 당시 연경당은 'ㄷ'자형 건물 한 채로 남쪽 앞이 터지고, 동쪽에 긴'ㅡ'자형 부속건물 두채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창건 당시의 연경당을 연희 공간으로 해석하는 학설이 제기 되고 있다.
지금의 연경당을 보면 왕의 집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살던 집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 여기서 왕이 사는 모습을 보았다면 참 친근한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존덕정 가는길
연경당의 뒷문으로 나와서 조그마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존덕정 일원으로 갈 수 있다.
존덕정 일원은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원래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 이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존덕정 일원의 연못을 관람지라 부른다.
폄우사의 뒷모습
폄우사의 앞모습
연경당에서 존덕정 일원으로 넘어오면서 제일 처음 볼 수 있는 것이 폄우사이다.
폄우사의 폄우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궐도>에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아 적어도 1872년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존덕정의 모습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 쓰인 나무판
존덕정 안 북쪽 지붕 아래에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 쓰인 나무판이 걸려 있다.
정조가 재위 22년(1798년)에 만천명월주인옹자서('세상의 모든 시냇물이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
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어 부르고, 그 서문을 새겨 존덕정에 걸어 놓은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뭇 개울들이 달을 닫아 빛나지만 달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바로 그 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한다'
라는 것으로 신하들에게 강력하게 충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존덕정 안쪽 지붕의 모습
존덕정은 1644(인조22)에 지어져 처음에 육면정이라고 부르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이중으로 되어있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이채롭다.
존덕정 천장 중앙에 그려진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은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존덕정의 모습
존덕정과 존덕정앞의 연못
존덕정은 후원의 정자중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라고 한다.
존덕정 안에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마련해 놓았다.
존덕정에 기대어 책을 보는 모습이 참 한가로워 보인다.
관람정의 모습
관람정의 뒷모습
관람정에서 관람지를 바라본 모습
관람정의 단청
관람정은 선형 기와지붕을 한 굴도리집으로,
건물의 일부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며 6개의 원주를 세우고 원주마다 주련을 달았으며 난간을 돌렸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추녀마루 6개가 각각 3개씩 모였으며 그 사이에 용마루를 설치하는 양식을 취하였다.
관람정에서 관람지를 본다면 정말 그경치가 멋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존덕정 일원에 처음 도착했을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관람정과 관람지 였다.
관람지의 풍경은 정말 자연과 잘 조화가된 연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가을에 찾는다면 진짜 멋진 단풍들로 황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옥류천 일원으로 가기 위한 언덕길
존덕정 일원에서 옥류천 일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금 걸어야 한다.
언덕길이라 별로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진짜 이 언덕길을 걸을때 여기가 서울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깊은 숙속에서 나혼자 산책하는 기분이랄까^^
주위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울창한 숲사이로 가끔씩 내려쬐는 햇살까지 정말 산책하면 기분좋아지는 곳인 것 같다.
이런 멋있는 정원을 가지고 있었던 왕들이 정말 부러워 졌던 것은 이길을 걸으면서 였다
언덕길 끝자락에서 만났던 단풍
언덕길 끝자락에서 단풍을 만났다.
가을은 아니지만 여름에 햇살 조명을 받은 단풍은 정말 이뻤다.
여기서 부터 가이드를 따라가지 않고 혼자서 후원 산책을 즐겼던 것 같다.
그냥 걸어서 후원의 자연 그대로를 산책하는 기분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취규정의 모습
취규정은 '학자들이 모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취규정은 휴식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언덕길을 모두 올라오면 취규정이 있다.
취규정에서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계신분을 보았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이 정자를 벗삼아 책을 읽으면 정말 집중이 잘 될것 같다.
옥류천 일원으로 가는 내리막길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존덕정 일원에서 오르막길을 올라와 정상에서 취규정을 만나서
옥류천 일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리막 길을 걸어야 한다.
이 내리막을 걸으면 더 깊이 후원의 숲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천천히 천천히 후원의 자연을 느끼면서 걸어가면 참 좋은 곳이다.
취한정의 모습
내리막길 끝자락에 옥류천 일원에 다왔다고 알리는 취한정의 모습이 보인다.
취한정은 임금이 옥류천 어정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정자라고 한다.
취한정
취한정에서 옥류천으로 들어가는 길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흐르는 무루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소요정의 모습
청의정의 모습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고 한다.
궁궐안에서 초가를 보니 약간 느낌이 색다르다.
화려한 단청과 함께 우뚝솟아 있는 기와집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초가지붕도 보이니 친근하다^^
태극정의 모습
소요암의 모습
소요암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라고 한다.
농산정에서 바라본 옥류천의 모습
농산정에서 창문을 통해서 본 옥류천 일대 풍경들이 참 좋다.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오느 한곳에도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공간을 조성 하였다는데
분산된 정자들이 곳곳의 자연과 잘 어우러져 옥류천 나름의 멋진 경관을 연출 하고 있다^^
농산정 앞에서 바라본 소요정의 모습
농산정의 전경
정사에 몰두하면 침식을 잃을 정도였다는 정조도 가끔은 후원에 와서 정취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농산정을 좋아하여 재숙을 하기도 했으며, 화성 행차 준비를 이곳에서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소요정의 모습
옥류천 일원은 정말 다양한 정자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서 하나의 멋진 경치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왕들이 왜 제일 먼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것 같다^^
옥류천 일원에서 돌아가는 길
계단길
옥류천 일원에서 언덕길을 다시 올라서 다른 내리막 길로 내려가면 다시 연경당 쪽으로 나온다.
연경당에서 불로문쪽 말고 반대쪽으로 가면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을 오르면 후원 출구로 나갈 수 있다.
마지막 내리막길
내리막길 중간에 보이는 우물
후원의 마지막을 알리는 다리
향나무의 모습
이 향나무는 나이가 75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한다.
정말 오래된 향나무 앞에서 후원관람을 마무리 해본다^^
창덕궁 후원을 모든 곳을 세밀하게 둘러 보았다고 말 할 수 없지만
창덕궁 후원을 정말 편안하게 산책했다고 말 할 수는 있다.
자동차들과 각종 소음이 난무하는 서울의 중심에서 창덕궁 후원은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울의 시끌벅적함을 잠시 잊고 아름다운 경치를 산책하며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아시아의 3대 정원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
처음 가보았던 후원은 나에게 편안함과 여러가지 느낌을 전달해 준다!
나오면서 가을에 단풍이 절정을 이룰때 이 후원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울긋불긋한 자연의 색상으로 옷을 바꿔입은 후원은 더욱더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창덕궁 후원은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인것 같다.
부부끼리도 많이 오고 연인들 끼리도 많이 온다.
가이드가 있다고 빡빡하게 관람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더 보고싶은 곳이 있다면 가이드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주말에 가정 한국적인 궁궐과 가장 자연과 가까운 정원을 한번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국내여행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네스북에 오른 교량분수,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야경을 보다 (0) | 2011.06.22 |
---|---|
친구 둘과 떠난 삼청동과 북촌한옥마을 출사 나들이~! (0) | 2011.06.15 |
세계인의 문화유산 가장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 일반관람 (0) | 2011.05.24 |
두 가족과 함께한 어린이대공원 벚꽃구경 (0) | 2011.04.16 |
친구둘과 찾은 여의도 벚꽃축제 (0) | 2011.04.14 |